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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장과 조직문화

17 min read|24. 1. 21.

성장

얼마 전, 개발자의 성장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성장에 대해 깊이 고민해봤다고 자부하지만 바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고 그 뒤로도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곧) 2024년의 제가 생각하는 성장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성장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봤습니다.

  • 개발을 더 빠르게 더 안정적으로 잘하게 되는 것
  • 버그를 디버깅을 해서 경험으로 쌓인 것
  • 새로 나온 기술을 적용해본 것
  •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 내가 만든 제품이 성공하는 경험을 하는 것
  •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것
  • 여러 이해관계자를 모두 만족시키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
  •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
  • ...

더 많겠지만 생각나는 것들을 대충 분류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특정 분야의 엔지니어로서의 역량
    • 새로운 분야와 기술에 대한 학습과 이해
    •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역량
    • 설계 역량
    • ...
  •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로서의 역량
    • 기술적 의사결정의 트레이드 오프를 계산하는 역량
    • 제품을 운영하는 역량
    • 커뮤니케이션 역량
    • ...
  •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량
    • 팀원과 함께 성장하는 역량
    • 조직 문화에 기여하는 역량
    • 커뮤니케이션 역량
    • ...
  • 직장인으로서의 역량
    • 일과 삶의 스케쥴링
    • 동기부여 역량
    • 커뮤니케이션 역량
    • ...

정리하고 보니 조금 명확해졌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분류마다 존재하는데, 그만큼 중요하고 역량에 따라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모든 분류에 포함시켰습니다. 이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내년 목표입니다.

핵심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하나씩 확장해나가는 것이 성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모습을 그려보니 원뿔형이 되더라구요. 위에서 바라보면 가운데가 진한 동심원 모양이고 옆에서 바라보면 코어한 영역이 가장 깊은 역삼각형 모양이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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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의 성장을 고민하다보면 그 조직의 문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요. 그래서 문화와 성장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문화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문화

문화는 모닥불과 같습니다.

모닥불은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를 줍니다. 개발하다 지칠 때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어려움을 맞딱뜨렸을 때, 화력으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모닥불을 빌미로 모이기도 합니다. 모닥불은 소중한 것이지만 피우기 어렵고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기술 조직에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처음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처음 불을 지피는 데엔 강력한 트리거가 필요하고 그 이후엔 끊임없이 장작을 넣어줘야 하는 수고가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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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닥불 앞에 앉아 불멍만 때리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불이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불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더 많이 신경써줘야 합니다.

문화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신경써줘야 합니다. 제품 개발 뿐만 아니라 문화를 수호하고 더 좋은 문화로 만드는 것 또한 조직 구성원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성장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는데요, 좋은 문화에 속해있으면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성장하는 개인들이 모인 조직엔 좋은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 반대, 좋은 문화가 구성원들의 성장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문화가 구성원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정 중 하나는 러닝을 공유받을 때 하나를 더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쉽게 얻는 정보는 쉽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개발자의 학과 습) 다른 사람이 공유해준 러닝은 몇일 전의 것도 제대로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개발 문화를 누리며 정보를 얻고 지식을 습득하면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장은 언제 이뤄질까요?

성장은 동기부여에서 비롯되며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3가지 요소가 동기부여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1. Autonomy(자율성): 자기주도적인 환경
  2. Competence(유능성): 전문 영역에서의 효능감
  3. Relatedness(관계성):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속감

그리고 다니엘 핑크 - 드라이브에 따르면 다음 3가지 요소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1. Purpose(목적): 조직에서 일의 의미, 삶의 의미
  2. Mastery(숙련): 수련을 통한 몰입
  3. Autonomy(자율성): 자기주도적인 환경

이 점들을 챙겨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Key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1. 학습-공유 사이클

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그 무엇보다 논리적 사고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요, 물론 중요하지만 지식을 학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은 경우를 되돌아보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문제였습니다.

문제 해결 과정을 징검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해보자면 뛰는 행위를 논리적 사고라고 비유하고 디딤돌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징검다리를 폴짝 폴짝 건널 수 있으나 딛을 돌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알아야 하는 지식의 구멍은 한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게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논리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분야에 대한 지식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공유할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고 성장합니다. 다만 저절로 공유할게 생기지 않습니다. 하던대로 하면 그냥 그대로 입니다. 학습 대상을 찾고 의도적으로(공유를 목적으로) 학습해야 합니다.

공유하며 문화에 기여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2. 강점에 집중

학습 대상을 찾기 어렵다면 본인의 강점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무기가 있으면 효능감이 높아집니다. 효능감은 자신감으로도 활용되기도 하고 책임감으로도 활용됩니다. 대표적인 선순환 사이클 중 하나인데요, 처음엔 어렵겠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하나를 찾는데 집중해보세요. 핵심 영역을 확보하고 그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영역을 점차 넓혀가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강점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꼭 대단한 것을 강점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하나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것이 시작일 수 있고 특정 도메인이나 제품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도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찾는다라고 표현했지만 강점은 생겨나는게 아니라 수련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개인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임팩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점에 집중한 개인이 모였을 때,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커집니다.

3. 팀과 같은 방향으로

개인의 시간을 쓰는 것을 넘어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동안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성장 방향을 회사의 성장과 얼라인시키기 위해 신경써야 합니다. 이 얼라인이 일치하지 않으면 조직도 개인도 괴로워집니다.

포인트는 이 팀에서 내가 지금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분류 중 어느 부분에 속하는지 먼저 고민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현재 팀에서 필요한 부분이 A, B, C인데 내가 강화하고 싶은 부분이 마침 A인 경우입니다.

최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세요.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부분을 함께 결정하세요.

4. 개인을 소중히

아무리 일에 몰입한다 하더라도 건강을 놓치면 일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건강 뿐만 아니라 본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일 때문에, 성장 때문에 잃는 순간 지속가능하지 못한 성장이 됩니다. 저울질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요, 그래서 이 균형을 잘 유지하기만 해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일과 삶의 통합이라는 글을 작성했습니다. 잘 쉬는 것과 고민이 있다면 '이토록 멋진 휴식'이라는 책과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하는가'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5. 메타인지 높이기

2, 3과 같은 고민을 하고 4와 같은 균형을 잡기 위해선 우선 본인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메타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와닿진 않았는데요, 우선 다음의 영역에 대해 알아보면 좋습니다.

  •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 내가 동기부여 받는 부분은 무엇인지
  • 내가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은 무엇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고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피드백 사이클이 필요한데요,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본인이 먼저 피드백을 주기 위해 동료를 관찰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좋은 문화는 서로 피드백을 수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를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로 '회고'가 있습니다. 주기적인 회고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습니다. 연간 회고도 좋지만 그 주기가 길기 때문에 분기 회고, 월간 회고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Why)

오랜만에 성장이 무엇인지, 성장은 언제 이뤄지는지,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성장을 추구합니다.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각자의 정의가 있을 것이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게 성장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더 넓고 뾰족한 원뿔형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이전에도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회고하는 글(그 때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쓴 적이 있는데요, 6개월 뒤, 1년 뒤 다른 정의를 말하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